주식회사 랑 대표, 안영수에 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어렸을 때 교회에서 동방박사 역을 맡았는데 공연을 보는 애들이 똘망똘망하게 봐주는 게 너무 재밌었다. 친구들이랑 놀 때도 분위기 주도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그때쯤부터 막연하게 내가 나서는 걸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이후에 서울예대에 붙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전혀 관련 없는 전공으로 입학하게 됐는데, 학교에 너무 안 나가서 1학년 때부터 제적을 당할 정도였다. 와중에 연극 동아리에서 만났던 선배가 아르바이트를 소개해준다고 해서 갔던 게 다단계 회사였고, 거기서 빚을 졌다. 빚 갚으려고 공사 일을 하면서 다신 학교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서울예대에 갔으면 좋아하는 연극도 하고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그땐 이 지경이 된 게 화가 나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강했다. 그래도 지하철 공사를 통해 번 돈으로 빚을 다 갚고, 친구가 본인이 다니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권유해서 갔더니 명동에서 포스터를 붙이는 일을 시키더라. 포스터 붙이면서 지나가는 사람이 ‘이게 뭐예요?’ 하고 물어보면 명함을 받아서 전화로 티켓을 판매하기도 하고. 그러다 공중전화로 114에 전화해서 여의도에 있는 회사에 인사과, 총무과로 연결해 직원 할인 혜택을 드리겠다고 해서 티켓 판매도 하고, 회사 구내식당에 포스터도 붙였다. 그리고 각종 서점에서 공연 티켓을 오프라인으로 판매했는데, 그때 판매 직원분들이랑 친해져서 회사에서 올리는 공연 포스터들을 잘 보이는 곳에 붙였다. 그렇게 하다 보니 아르바이트에서 정직원이 됐다. 그 이후에도 인터미션 때 객석에 들어가서 직접 프로그램 북을 팔기도 하고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관객들과 노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뮤지컬 <난쟁이들>에서 굉장히 신선한 시도를 많이 하셨죠.
이전부터 회사에서 먼저 레퍼런스를 찾고, 그걸로 디자이너들과 미팅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물론 원하는 방향을 레퍼런스로 제의하는 게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란 걸 알지만, 마케팅하는 사람들이 디자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데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끼리 탁상공론만 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전문가들에게 대본과 공연의 컨셉만 줘도 더 잘 만들어 올 수 있을 텐데 싶어서,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최대한 수용한 결과가 <난쟁이들>이었다. <난쟁이들>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던 영상이 찰리 역의 정동화, 조형균 배우를 소개하는 거였는데, 공개 전까지 모든 직원이 다 긴장하고 있었다. 그동안은 배우들을 다 멋있게만 표현했는데 바보같이 표현하면 부정적인 반응만 돌아올까봐. 하지만 반응이 좋았기에 앞으로 진행 방향은 이거다, 싶었다.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디자이너들에게 맡기고 다른 공연 마지막 공연일을 챙기는 등, 말 같지도 않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상세페이지 하나로도 사람들에게 공연 자체가 언급되는 빈도가 높아졌다. 이렇게 티켓을 구매하는 과정부터 흥미를 유발하고, 공연장에 도착한 로비에서도 최대한 즐겁게 만들고 싶었다.
특이한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동종 업계 관계자나 참여하는 배우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동종 업계 관계자들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부러워하는 거 같기도 하고, 저렇게 하지는 말아야지 다짐하는 거 같기도 하고. (웃음) 주변에서 B급 뮤지컬이 올라올 때 이건 랑에서 마케팅을 하면 딱인데, 라고 바로 떠올려 주시는 분들도 많다. <난쟁이들> 때는 배우들도 객석의 반응이 있어야 재밌게 이끌어갈 수 있는데 오늘 공연은 반응이 없어서 힘들었다는 의견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아예 반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공연을 볼 수 있는 날을 만들어볼까? 라는 얘기가 나왔다. 안 그래도 영화는 싱어롱관이 아예 따로 있다는 얘길 듣고 거기에 착안해서 싱어롱 데이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관객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애드립까지도 다 따라 하시더라. 그래서 배우들도 더욱 에너지를 받아서 그 날 공연은 정말 모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은 거 같다. 뮤지컬 <시라노>에서는 24시간 라이브 방송을 하니까 사인회나 커튼콜 이벤트에 잘 참여하지 않는 류정한 배우도 ‘저렇게까지 하는데… 내가 해야지…’ 라고 하더라. (웃음)
그럼 지금까지 했던 이벤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이벤트를 골라본다면?
방금 말한 싱어롱 데이. 다회차 관람객들은 대사나 가사를 다 외우는 분들인데 노래를 부를 공간이 없지 않나. 다 같이 공연장에서 시원하게 부르는 게 좋은 것 같다.
앞으로도 더 시도하고 싶은 이벤트가 있나요?
공연장 로비부터 공연의 컨셉대로 꾸며서, 그 공연의 분위기에 푹 빠질 수 있게 만들어 놓고 싶다. MD 판매하는 직원도 최대한 공연 분위기에 맞춰 입히고. 예를 들어 뮤지컬 <풍월주>라면 1월 1일에 판을 벌여놓고 운세를 봐준다든지. 공연장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와서 잘 놀다 가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분위기를 만들다 보면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 하나가 공연계의 홍보 매체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현재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혜화로운 공연 생활'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예전에 <난쟁이들>의 홍보 영상을 찍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 이후로 뮤지컬 <이블데드>에서도 무조건 멋있게 하기보다는 재밌게 하려고 다양하게 시도하던 중, 생각보다 유튜버들이 인지도나 홍보 효과가 크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때마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채택되면서 공연에 관련된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야 하는 미션이 생겼다. 처음에는 뮤지컬 매니아들에게 한정 짓지 않고, 대학로를 방문하는 일반 관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콘텐츠 위주로 제작했다. 대학로 맛집을 알려주거나, 관람객 구성에 따른 공연을 추천하는 내용을 재밌게 담았다. 그 당시 진행하던 작품이 <풍월주>였는데, 왜 정작 작품 홍보는 그렇게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지원 사업은 거의 마무리 단계라 새로운 컨텐츠를 제작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리고 지원 사업이 끝났다고 이제 겨우 만든 유튜브 채널을 버려두기에는 아까웠고. 그런 환경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건 라이브 방송뿐이었다. 주변에서는 말실수할까 걱정하며 만류했지만 10여 년 전에 SEEBOX라는 인터넷 방송에서 뮤지컬 관련 방송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한 번 시도는 해보자. 해보고 반응이 별로면 말자.’ 하고 시작했다. 그런데 기대보다 다들 좋게 봐주시고, 사람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서 즐겁게 방송하고 있다.
'혜화로운 공연 생활'이 단순한 유튜브 방송으로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에서도 꾸준히 이벤트를 계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뮤지컬 동호회에서 40~50명이 단체로 관람을 하고 뒤풀이를 가던 문화가 있었다. 지금은 <베르테르>가 곧 20주년이지만, 예전엔 베사모(베르테르를 사랑하는 모임)라는 프리챌 커뮤니티에서 단체 활동도 하고, <아이러브유>가 2004년에 초연했을 때, 여러 동호회 회원들끼리 한 회차를 전관하는 행사도 진행했었다. 그때는 그런 일이 흔했는데, 지금은 혼자 공연을 보는 시대가 됐다. 관객 분들이 공연 보고 나서 좋았던 점, 나빴던 점 얘기할 거리가 많을 텐데 대부분은 SNS에만 일방적으로 감상을 올리다 보니 예전처럼 다 같이 터놓고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초반에 <풍월주>와 <호프>를 가지고 단체 관람 후 뒤풀이를 진행했는데 어색한 것도 잠깐이고 같은 매니아들끼리 모이니 곧 분위기가 풀리더라.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 자신도 즐거웠다. 그 이후로는 매달 꾸준히 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가 관람 전, 극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창작진과 함께 사전 공부 방송을 진행하게 됐는데 사전 공부 방송을 위해선 관객들이 궁금한 점을 파악해야 해서 사전 질문 방송도 생겼다. 또 단관 후 회식비 정산이나 후기에 대한 얘기도 들어보는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서 리뷰 방송도 하게 됐다. 이렇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자는 취지에서 4개의 콘텐츠가 확정이 됐다. 같이 방송하는 우찬 배우가 제안했던 '혜화로운 공연생활'이라는 채널 이름대로 공부도 하고, 공연 생활도 하고. (웃음)
오프라인에서 관객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무엇인가요?
본인들이 좋아하는 공연이나 배우들 영업을 제일 많이 해주시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시라노> 홍보를 위해 24시간 연속 라이브 방송도 하셨던데.
주위에서는 고생이 많았다고들 하는데, 사실 평소에도 기본 4시간 정도 방송하고 그것조차 짧게 느껴질 때가 많아서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그동안 제가 방송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뮤지컬 매니아 분들이 생각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는데 이번 24시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더 깊은 공감대 형성이 됐다고 생각한다. 관계자들과 소비자들이 좀 더 편하게 얘기하는 창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는데, 혜화로운 공연생활이 그 발판이 되어준 것 같다. 우려했던 것보다 거부감 없이 잘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하다.
'혜화로운 공연생활'에 선정되는 공연 기준이 있다면?
딱히 기준은 없다. 저번에는 방송에서 추첨으로 뽑은 적도 있다. 대신 방송 초창기에는 창작 공연만 한해서 했다가, 얼마 전에는 창작을 우선으로 하되 라이선스 극도 포함하는 걸로 바꾸었다. 라이선스 극 중에도 제가 보고 싶은 공연들이 있기 때문에 바꾸자고 한 거다. (웃음)
최근에 공연장에서 자주 화자 되는 관크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바가 많은 것 같아요.
공연의 종류나 관객들의 주관적 기준에 따라 ‘관크’의 정도가 다르게 다가오기도 하는데, 모두가 쾌적한 관람을 할 수 있게 공연 관람 에티켓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공연장 관람 안내만으로는 공연을 처음 보는 분들이 왜 그렇게 해서 봐야 하는지 이해하기에 부족하다고 본다. 가능하다면 대학로 일대에서 캠페인을 벌인다던가, 공연 전 관람 유의사항 안내 방법을 조금만 바꿔서 이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 공연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 중인지 인지시킬 수 있다면 모두가 이렇게 노력하는 공연을 소중하게 잘 담아가야지,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하지만 공연장 자체의 협조도 필요한 부분이라 원하는 대로 하기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앞으로 '혜화로운 공연 생활'의 발전 방향에 대한 계획은?
앞으로는 공연 관련 유튜버들과 같이 단체관람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공연 홍보 효과도 좀 더 극대화하고 싶다. 라디오 스타 같은 예능 프로도 만들어서 방송 콘텐츠의 종류도 다양하게 하거나, 혜화로운 공연생활 타이틀로 오프라인 콘서트도 하고 싶다. 업계에서는 공연 컨텐츠만 가지고 백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갖게 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고 다들 말하는데 백만 명까지는 안되더라도 다양한 사람들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채널로 만들어나가는 게 목표다.
공연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고충이 있다면요?
첫 번째로 한 공연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제작자가 자본력이 없어서, 3연~4연까지 하면 될 것 같은데 재연에서 공연의 수명이 끊어지는 일이 안타깝다. 두 번째, 할인율이 너무 많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할인이 있는 게 좋겠지만, 그런 경우에는 손익분기점을 넘기기가 힘들다. 판매가 부진한 공연에 할인을 더하라고 하는 건 그 공연을 더 죽이는 일이 된다. 세 번째,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이 너무 많다. 네 번째, 예전엔 대부분 1인당 2매씩 예매했지만 요즘은 1인당 1매로 예매한 경우가 많아서 몇백 석의 극장에서 매표소 창구 1개로 티켓 발권 및 배부 처리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매표소를 늘리면 인건비가 2배로 든다. 영화관처럼 티켓 자동발권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마케팅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고충은, 공연을 만드는 제작자와 티켓을 구매하는 소비자와 소통을 할 수 있는 매체가 없다는 것. 일방적인 대화가 아니라 상대방이 왜 그렇게 했는지 궁금한 자세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안영수로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사실 지금의 혜화로운 공연생활은 처음 의도한 방향과는 아주 다르다. 하지만 지금처럼 열심히 하다 보면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까지는 내가 좋아서 했던 일만 하고 있는데 그래도 이제부터는 비즈니스를 해야겠다고 다짐 중이다. 랑에서는 내년부터 제작 공연을 좀 더 늘릴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배우 제안이 들어오면 꼭 해야지, 생각 중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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